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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고양이 2017. 2. 14. 22:09
                                ◑ https://youtu.be/omC2iJweBz4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창가에도
아마 몇줄기는 내려지겠지

_김소월, 첫사랑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자면, 이 것은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의 기록이자 널 왜 사랑하는지, 사랑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내가 널 사랑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이 서문에서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널 사랑한다는 점 하나이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기록을 적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에 수필 하는 나는 붓펜을 한 바퀴쯤 돌렸을 것이다. ( 자욱한 잉크 자국. ) 내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부터 시작하여 달라진 일상을 보내줄까, 아니면 너를 만났을 때부터 시작된 로맨스를 써줄까. 이것은 네 선택임과 동시에 내 선택이다. 나는 이런 의미 없는 소모전을 책과 할 정도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너를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알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 학우, 클래스 메이트. ) 그럼에도 나는 너를 알지 못했다. 이 모순됨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 독이라면 독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독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성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른 또한 마찬가진 일임에도 꼭 치기 어린아이에게만 허용되는 것 마냥 혀를 날름 내미는 학교는 나에겐 그 누구보다도 가장 끔찍하고 거대한 뱀으로 보였다. 그래 나는 설치류였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학교를 친애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기대치를 주고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평균을 내밀며아내는 곳이 학교였다. 나는 뱀의 혓바닥 위에서 행복을 느꼈다. 아니면 미약한 안식일 지도 모르겠다. 즉, 나는 인생의 9년을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 반에서 있어도 모를 그런 아웃사이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필요한 존재는 아녔을 것이다.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너에게도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변해버린 시발점은 영화보다는 이 프로젝트다. 나는 놀라울 것도 없이 이 뻔한 전개에 충격받기는커녕 놀이를 즐길 정도로 유유자적한 아이였음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같은 반 친우 인지도 잘 형용할 수 없는 아이가 개가 되었음에도 멀정히 구연동화를 할리가 없다. 아니면 나는 의외로 우위를 실감하며 그것에 푹 빠져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책 읽어주는 카나리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록 얻지는 못했지만.) 놀랍지 않게 나는 이 부조리로 가득한 곳에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얻었다. 아마도 내가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이며 가장 거대하고 호화로운 것. 그것은 너다. 너의 존재다.

나는 그저 단순하게 습관보다는 의무처럼 책을 꺼내 읽어주었을 뿐이고 너는 그런 내게 흥미를 느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지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음이 분명했다. 공허함이 잔뜩 배어 묻은 목소리는 네게 듣기 좋았을까.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않는다.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내가 뱉었던 가장 쓸모없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조차도 그 말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내 혀를 조각내고 싶은 마음인데 너는 어떠하리. 너는 내가 너를 싫어한다.라고 말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 모순되는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는 것에 나는 나에게 화가 남과 동시에 너를 더욱 깊숙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 것은 너무나도 잔인해서 당장이라도 주워 담고 싶었다. 내 혀는 조각났으니 네 귀는 틀어 막혔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나도 우스으면서도 생각보다 잔인했다. 사람의 역설적인 말 한마디로 그 모든 운명이 정체된다는 것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지. 나는 미련했다.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네게 향하는 말을 비틀지는 않았다. 이것은 내가 수습해야 하고 내가 업지른 물이니 내가 닦아야 할 것이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 정확하게 나는 우리가 그 빌어먹을 알파벳으로 서로에게 벽을 세워둘때부터 너를 보고 있었다. 너에게 사랑이 아닌 좋아한다라는 감정으로 있었을 때에는 (무슨 차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기다렸다. 네가 그 느지막이 노을 진 하늘자락에 달려올 때도. 네가 아침 닭 울기도 전에 일어나 있었을 때도. 아니면 평범하게 다른 아이들과 변함없이 하루 종일 있었을 때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점점 네 생활패턴에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 네가 원한 바로 그대로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만족하는가. 나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만족하지 못했다. 너를 기다리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무어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아무래도 미래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너와 이야기할 때 내 심장이 급격하게 움직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부정맥이다. ( 농담이다. ) 그저 너와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를 쓰러트리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이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아내어 내 심장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로 접촉을 시도했다. 역효과였다. 이보다 더 빨리 뛸 수 있었다고 자랑이라도 하듯이 굴었던 것이다. 겁이 났다. 나는 네게 다가가고 싶었으나 이 끝의 파멸까진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치 없게도 내가 머뭇거리고 있었을 때에 나는 네 이름을 알게 되었다. (...) 우리가 죽었다는 뜻이다. 죽었음에도 큰 위화감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같이 죽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지경이였다. 나만 살아남았다면 나는 이 기록을 납골당에라도 읽어줘야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야 농담이라고 하는 이야기지. 그 반대의 상황이었더라면 내가 농담을 하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물론 둘 다 살았다면 하는 조금의 갈망은 존재한다. 그럼 이 기록을 꽃다발과 함께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나는 이 상황이 퍽 마음에 든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너는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모순됨이 분명하면서도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한다. 그것은 내가 너를 예뻐한다는 의미다. 나는 너를 예뻐하고 너를 예뻐해주고 싶다. 나는 이 예쁨을 경애한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것은 네가 나를 예뻐해 줬으면 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다. 나는 나 혼자의 예쁨으로는 죽어도 살아갈 수 없다. 네가 나를 예뻐해 주고, 나를 예뻐했으면 한다. 나는 그 예쁨을 총애한다.

그리고 세간에는 이 예쁨을 무엇이라고 하는 가 하면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냐. 나는 그것에 긍정은커녕 부정도 못할 다름이다. 이것이 내가 사랑을 자각하는 방법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걸 사랑이라고 형용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형용하지 못할 것을 왜 형용하려 이리도 어리석은지 이젠 알 수도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이것은 서문과 동일하다.      야나기 히로미. 예쁜 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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